토스는 죄가 없다
2024-11-16
토스를 퇴사하고 미러로 이직한지도 벌써 7개월 차가 되었다. 이제야 토스를 다니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늦은 회고를 작성하려고 한다.
토스에서 한 일
나는 토스를 다닌 2년의 95% 정도를 한 팀에서 제품 개발을 했다. 만 7세부터 18세까지의 연령층을 타겟으로 하는 틴즈 팀이었다. 내가 팀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입사하니까 알아서 배정이 되어있었다.
왜 틴즈에 가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냥 당시에 내가 엄청 어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소프트웨어 고등학교를 나와서 19살 부터 빠르게 사회에 뛰어들었고, 그러다보니 토스에 입사했을 당시의 나이가 21살이었다. 틴즈가 타겟하는 유저와 가장 가까운 나이가 나였기 때문에 가게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틴즈의 대표 제품은 역시 토스유스카드이다. 토스머니라는 선물전자지급수단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선불카드이다. 무려 만 7세부터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는데, 유저들이 주체적인 금융 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만든다는 틴즈 팀의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된 제품이었다.
그 외에 코레일, 티머니와 협업해서 유스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하고, CU, GS와 협업하여 편의점 택배를 토스 앱에서 예약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청소년들이 가상의 주식 투자를 해볼 수 있는 모의 주식 투자 제품을 만들고, 애플과 협업하여 수험생 대상으로 아이패드, 맥북을 토스 커머스에서 할인해주는 이벤트 제품을 만드는 등등등 틴즈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다 적기 힘들 정도로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했다.
팀에서 제품 개발을 한 것 외에 프론트엔드 챕터에 기술적인 기여도 자주 했다. 토스에 입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프론트엔드와 관련된 모든 인프라와 사내 라이브러리로 만들어져 쓰이는 모든 핵심 코드를 전부 파악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모르는 사내 라이브러리가 보이면 내부 구현을 전부 읽어보고 파악하는 것이 한동안 내 취미일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이브러리를 쓰는 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나 혼자서 빠르게 수정해서 기여할 수 있었고, 다른 동료들의 도움 요청에도 빠르게 답변을 남겨줄 수 있었다. 단순히 개선하고 싶은 것들, 추가하고 싶은 것들도 빠르게 구현하게 기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와 동료들의 생산성이 개선되는 것도 좋았지만, 100개가 넘는 라이브러리와 그것을 사용하는 100명이 넘는 프론트엔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사내 라이브러리 생태계의 수많은 기술적인 기반과 구현들을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동료가 알려준 개념들을 정리한게 끝인 별거 없는 글이지만, 기술 블로그 글을 하나 써보기도 했다. 사내 라이브러리 일부를 오픈소스화한 slash를 운영해보기도 하고.
첫 팀에서 느낀 한계점
사실 나는 토스에서 많은 시간을 번아웃 속에 지냈다. 제품 개발이 끔찍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내 업무의 95%는 기승전 이벤트 제품 개발이었기 때문이다.
명절, 만우절, 어린이날 등 특별한 시즌이 오면, 그 때 신규/부활 유저 유치와 기존 유저들의 앱 이용을 위해 초단기 이벤트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회를 열어서 1등에게 치킨을 준다거나, 공유하면 기프티콘과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돈써서 유저를 데려올 때 만들 수 있는 뻔한 종류의 제품들이다.
문제는 개발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보통 배포일 직전의 일주일 동안 개발을 하게 되는데, 월 ~ 화는 기획과 디자인이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기간이고, 그럼 대략 화요일 늦은 오후 부터 목요일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개발 부터 QA까지 전부 마무리해야 했다. 나만 개발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백엔드 개발자도 당연히 함께 일해야 하는 거고, 필요에 따라 iOS, 안드로이드 개발자도 붙어야 한다. 로깅을 위해 데이터 직군도 붙어야 한다. 그럼 당연히 그 짧은 기간에도 병목이 생길 수밖에 없고, 밤 새고 잠도 못자고 아주 난리가 난다.
근데 토스의 업무량은 이미 세간에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인데, 이 사람은 왜 자기가 입사해놓고 불평하고 있는 걸까?
일반적으로 제품 개발을 하면서 업무량이 늘어나는 이유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협업사의 요구사항이 갑자기 바뀌거나, 서비스에 장애가 생겨 대응을 하는 등, 우리의 업무량을 늘리고, 일정이 밀리도록 만드는 정말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만우절이, 어린이날이, 그외 모든 기념일이 예기치 못한 상황인가? 기념일은 "짜잔, 오늘이 사실은 설날이니깐 쉬시길 바래용!" 과 같은 식으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정확한 일자가 정해져있다. 업무량이 많은 것과, 업무량이 많도록 자초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내가 애정을 가지고 유지보수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는 것과, 애정도 전혀 없고 며칠 쓰고 내다 버릴 제품을 위해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는 것 또한 당연히 다르다.
내가 제품과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기회도 적었는데, 모바일 웹뷰에서 돌아가는 초단기 제품이 기술적으로 당연히 어려울리가 없었다. 비즈니스적으로도 얻을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1300만명이 넘게 사용하는 서비스의 인지도와 자본에 힘입어 만드는 이벤트에서 얻을 수 있는 점은 겨우 유저를 몇명 데려왔는지 뿐이었다.
그런 시간을 지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번아웃이 왔다. 나는 뭘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게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며, 여러 부정적인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새로운 팀
결국 퇴사와 팀을 옮기는 것 사이에서 오랜 시간 갈등하다가, 일단 팀을 옮겨보는 선택지를 골랐다. 토스에 정말 많은 팀이 존재하는데 한 팀만 거치고 퇴사하는 것이 너무 아쉽기도 했고, 빠르게 팀을 옮겨보지 않은 것, 여러 팀에서 일해보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선택한 두 번째 팀은 토스 커머스에 입점한 셀러들의 어드민을 책임지는 쇼핑 플랫폼 팀이었다. 첫 팀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던 동료 일부가 먼저 쇼핑 플랫폼 팀으로 옮겨갔기에, 너무 모험을 하는 것 대신 잘 아는 동료들이 있고 새로운 비즈니스도 해볼 수 있는 곳으로 따라간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한 나를 반긴 것은 끔찍하게 불안정한 시스템이었다. 수정하려고 손만 대면 전혀 관련없는 곳이 터져나가는 불안정한 백엔드, 서로 일말의 논의도 하지 않고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끔찍한 API 스펙, 그 어떤 것도 문서화가 안되어있는 제품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래서 제품 개발을 하긴 커녕, 기존의 불안정한 시스템을 최대한 갈아 엎어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 지금까지의 히스토리를 발굴해내 문서화하느라 팀원들이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실수, 수많은 장애, 이해관계자와의 갈등, 모든 것이 혼란이었다.
결국 나는 팀을 넘어서 토스라는 회사 자체에 마음이 식어버렸다.
토스는 죄가 없다
위 내용만 남기면 내가 거쳐온 팀들 전체를, 그리고 토스 전체를 일반화 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변호를 하려고 한다. 토스는 죄가 없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다.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토스 만큼 수준 높은 기반 인프라를 만들어둔 팀은 거의 없다. 수많은 뛰어난 구성원이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다 보니 생산성에 정말 진심이다. 줄일 수 있는 일, 안해도 되는 일은 죄다 없애버리는 곳이다.
죄가 있는 쪽은 '토스 출신'이라는 네임 밸류에만 취해있고, 높은 급여는 그대로 누리고 싶어하면서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일, 하지 않은 일은 정치질로 무마한다. 이런 사람들이 거쳐간 조직은 뒤에 합류한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다른 팀원과 의견 충돌이 일어난 상황 등 감정적인 요소가 빠질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우는게 당연하면서도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일할 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망설임 없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그만큼 내가 잘못된 것이었다는걸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자주 있었기에 잘 알고 있다.
네임 밸류도 마찬가지다. 어디 출신이라는, 어디 현직자라는 네임 밸류는 한국에서 정말 좋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낱 주니어 개발자인 나 조차도 토스에 다닐 때는 정말 많은 연락이 왔었다. 여러 회사에서 채용 담당자 분들이 연락을 주셨고, 나처럼 대기업을 다니는 대단한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연락을 주시는 취준생 분들도 있었다. 난 토스에 다니고 있다는 것 빼고는 딱히 보여줄게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데 어떠한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것은,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는 다르다. 영화 속 입체적인 배경을 지닌 악역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되진 않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설령 그것이 흑역사가 되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안타깝다.
욕심
상기한 내용들 외에도, 그당시 나의 욕심 때문에 토스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내가 첫 회사를 정말 즐겁게 다녔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내가 애정을 가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의미없이 느껴질 때가 가장 화가 난다. 언제나 가치 창출을 하고 있음을 느끼고 싶고, 언제나 유저들한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내가 주도적으로 특정 퍼널의 전환율을 개선해 나가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면 정말 좋았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것을 도전해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특정한 분야 내에서만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라고 해서 프론트엔드 개발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API 개발도 내가 했고, AWS 인프라 다루는 것도 내가 했다. 자기 분야 바깥을 경험해본 사람이 훨씬 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과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므로, 다른 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충족하며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분야 바깥의 일을 도전해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히 내가 작업을 맡을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작업을 할 때 어려움을 느끼면 도와주어 적응하게 해주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토스에서도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었다. 이벤트 제품이 너무 스트레스였을 뿐이지, 길진 않지만 유지보수 했던 제품들도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사실 토스에서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게 양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토스는 이미 직군 별로 많은 엔지니어가 일하는 분업화가 잘 되어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이미 준비된 타 분야 인력과 잘 만들어진 인프라를 활용해 내 분야에서 빠르고 높은 퀄리티로 작업을 처리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에서 중요한게, 내 예전 동료들은 이미 경험이 많아 분야 상관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토스같은 대기업은 보통 자신의 커리어를 한 분야로 정해서 그것을 경쟁력으로써 발전시켜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 부터가 막힌다.
쉽게 설명하면, 각 분야별로 (아마도)업계에서 제일 잘 한다는 사람들 많이 뽑아놨고, 나도 프론트엔드 잘 하니까 프론트엔드 빨리 하라고 뽑아놓은 건데, 왜 능률 떨어지게 다른 일까지 손대려 하냐 이거다. 이는 토스가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큰 조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애초에 사람도 자본도 한정되어 있으니,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채용 없이도 한 명 더 생기는게 엄청 큰 이득이니까.
물론 토스는 전체를 봤을 때 대기업인 것이지, 내부를 보면 수많은 작은 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리소스가 부족한 쪽의 일을 같이 해주다가 전향하는 사례가 아주 드물게 있긴 하다. 하지만 상기한 이유로 그냥 챕터에 문의해서 팀에 사람 한 명을 더 데려오는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느껴지던 그 때, 첫 직장에서 함께했던, 지금은 미러를 창업한 동료의 연락이 왔다.
이직
연락을 준 동료는 토스를 다니는 동안 여러번 제안을 해왔던 분이다. 함께하면 성장은 보장되어있을 정도로 잘하는 분이다. 사실 첫 회사에서 나를 신입 개발자로 직접 채용했었던 분인데, 단순 개발을 넘어 여러 심화 주제를 다뤄볼 수 있게,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작업해볼 수 있게 이끌어 주셨다.
그 당시에 했던 경험의 일부는 블로그에 글로 남겨뒀다. 하나같이 쓴지 2년이 넘은 것들이라 퀄리티 보장은 안된다.
- 단순 React 리렌더링 최적화
- 서비스 워커, SEO, 번들 경량화 등 프론트엔드 심화 주제
-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전부 설계 및 개발
- 그외 글로 정리하지 않은 수많은 작업들. 이력서에는 조금 더 자세히 남아있다.
제품도 내가 한번 쯤 꼭 만들어보고 싶던 종류였다. 그런데 연락을 받기 직전 토스에서 연봉 협상이 너무 잘되기도 했고, 초기 스타트업을 가는 것이 현재 내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큰 모험인 것 같아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토스는 다시 돌아갈 수 있어도 미러는 합류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러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는 경험이 내 미래 커리어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돈과 안정감 보다는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택했고, 미러로 이직했다.
처음엔 이직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있었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기대한 대로 미러를 다닌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고, 앞으로 이력서와 블로그에 다시 열심히 기록해나갈 생각이다.
마무리
원래 회고글에는 좋은 말만 적던데, 부정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넣었나 싶다. 그냥 나의 상황이 안좋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토스는 죄가 없다. 정말 좋은 회사이다.
다만, 나는 마음이 끌리는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잡고 보는 성격인지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기회를 잡고 도전하는 것은 결과와 성장을 남기지만, 도전을 포기하고 제자리에 있는 것은 높은 확률로 후회를 남긴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도 과감히 도전할 것 같다.